전 MLB 올스타 투수 토미 존 향년 83세 별세, 팔꿈치 수술의 이름 주인공
토미 존이 2026년 8월 15일 플로리다주 브레이던턴 자택에서 83세로 별세했다. 전 MLB 올스타 투수이자 토미 존 수술의 이름을 딴 인물. 26년 커리어, 수술 유산, 추모를 정리한다.
메이저리그베이스볼(MLB) 전 올스타 투수 토미 존은 자신의 커리어와 수천 명의 선수를 구한 획기적인 팔꿈치 재건 수술의 이름이 된 인물로 알려져, 2026년 8월 15일(토) 밤 플로리다주 브레이던턴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3세.
에이전트 마이크 매기어는 8월 16일(일) 미국 언론에 사망을 확인했다. 매기어에 따르면 존은 건강 문제와 싸우며 호스피스 치료를 받고 있었고, 임종 시 아내 셰릴과 가족이 곁에 있었다.
편집부 주:본 기사는 AP통신(ABC News 경유), CBS News, MLB.com,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 구단 성명을 바탕으로 2026년 8월 16일 보도를 정리했습니다.
6개 구단에서 26년
토머스 에드워드 존 주니어는 1963년부터 1989년까지 26년 메이저리그에서 288승을 거두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뛰었다.
| 항목 | 통산 |
|---|---|
| 승패 | 288승 231패 |
| 평균자책점 | 3.34 |
| 탈삼진 | 2,245 |
| 올스타 선발 | 4회 |
1943년 5월 22일 인디애나주 테레오트 출생. 거스트마이어 고교에서 야구와 농구 스타였다. 1961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말더듬으로 졸업 연설을 거절했다. 켄터키 대학 농구 스카우트를 받았지만 야구를 택해 클리블랜드와 계약했다.
존은 1963년 9월 6일 빅리그 데뷔. 1965년 시카고로 트레이드된 뒤 선발 로테이션의 중심이 됐다. 1966년 아메리칸리그 5완봉으로 공동 선두, 1967년 6완봉으로 리그 1위. 1971년 다저스로 이적했다.
내구성으로 유명한 존은 1966년 화이트삭스와 1989년 양키스 모두 개막전 선발을 맡았다——20년이 넘는 기간이다. 상징적인 팔꿈치 수술 전 124승, 이후 164승을 올렸고, 46번째 생일 며칠 뒤 현역을 마쳤다.
장수와 승수에도 불구하고 존은 리그 승수나 탈삼진 1위를 차지한 적이 없다. 1995년부터 2009년까지 야구 명예의 전당 투표에 이름이 올랐지만 최고 **31.7%**에 그쳤고, 입성에 필요한 **75%**에는 한참 못 미쳤다.
야구를 바꾼 수술
1974년, 31세 때 몬트리올 엑스포스전에서 왼손 투구 팔꿈치 **요골상부인대(UCL)**를 찢었다——역사적으로 투수 커리어를 끝내던 부상이었다.
다저스 팀 닥터 프랭크 조브는 오른팔 전완의 힘줄로 인대를 대체하는 수술을 제안했다. 조브는 성공 확률을 대략 100분의 1로 추정했다. 존은 동의했다.
“조브 박사, 선생님이 일을 하시면 저도 제 일을 하겠습니다.”——존은 당시 의사에게 말했다.
1974년 9월 25일 수술은 약 4시간 걸렸다. 조브는 상완골과 요골에 구멍을 뚫고 힘줄을 8자로 꿰맸다. 몇 개 손가락 감각을 잃은 존에게는 이후 신경 추가 시술이 필요했다. 팔은 4개월 깁스로 고정됐다.
존은 1975년 전체를 쉬고 근력을 회복한 뒤 1976년 다저스 로테이션에 복귀——UCL 재건 후 경기에 선발한 최초의 투수가 됐다. 이후 14시즌 더 던지며 야구계 ‘바이오닉 맨’ 별명을 얻었다.
| 이정표 | 내용 |
|---|---|
| 수술 후 첫 선발 | 1976년 대 애틀랜타 |
| 첫 20승 시즌 | 1977년(20승 7패, NL 사이영 투표 2위) |
| 양키스 전성기 | 1979년 21승 9패, 1980년 22승 9패——연속 20승의 마지막 양키 |
| 월드시리즈 | 1981년 뉴욕 대 다저스, 1승 0패, 평균자책 0.69 |
이후 2,600명 이상의 메이저리거——수천 명의 아마추어——가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오타니 쇼헤이, 저스틴 버랜더, 브라이스 하퍼 등 스타도 혜택을 봤다. 머리엄-웹스터 사전은 2019년 이 용어를 수록했다.
존은 수술 후 원래 깁스——1974년 다저스 팀 동료, 조브, 아나운서 빈 스컬리의 사인——을 2022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했다.
사망 며칠 전 작별 메시지
2026년 8월 8일, 뉴욕 양키스는 구단 올드타이머스 데이 주말에 호스피스에서 쓴 존의 메시지를 공유했다.
게시물에서 존은 양키스 조직, 스타인브레너 가문, 조브 박사, 26년 커리어를 응원한 팬들에게 감사했다:
“26년 동안 저와 팀 동료를 응원해 준 모든 팬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는 또 테레오트를 떠나 첫 투수 일자리에 나설 때 아버지가 한 말을 떠올렸다——빅리그에서 성공하든 아니든, 자신은 언제나 **‘인디애나주 테레오트의 토미 존’**이라는 것을.
존은 그 메시지가 공개된 지 7일 후 별세했다.
구단과 야구계의 추모
양키스는 존을 **‘로테이션의 기반’**이자 **‘양키스 팬이 오래 사랑한 선수’**라 칭하며, 수술 후 업적이 **‘전 세계 수많은 선수의 운명과 궤적을 바꿨다’**고 했지만, 때로 투수로서의 뛰어남을 가렸다고 덧붙였다.
다저스 사장 겸 CEO 스탠 카스텐은 수술을 받은 최초의 투수로서 존의 용기 있는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했고, 그 영향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 다저스 GM 네드 콜레티는 소셜미디어에 **‘명예의 전당에 토미 존이 없다’**고 올렸다.
마운드 너머의 삶
은퇴 후 존은 1990년대 미네소타 트윈스와 양키스 해설을 맡았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브리지포트 블루피시를 지휘했다.
존은 2020년 12월 코로나19로 입원했고 이후 길랑-바레 증후군을 앓았다. 2022년 뉴욕 포스트에 하지가 수개월 마비됐다고 밝혔다.
첫 아내 샐리 시몬스와 네 자녀를 두었다: 타마라, 토미 3세, 트래비스, 그리고 2010년 28세에 처방약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난 테일러. 부부는 2013년 이혼했다. 아들 토미 3세는 카이로프랙터가 되어 청소년 스포츠 부상 예방에 글을 썼다. 2018년 존은 트윗으로 **‘내 이름이 프로보다 어린이에게 더 많이 쓰이는 수술에 붙는 게 싫다’**고 했다.
존을 떠나보내는 이는 셰릴, 자녀들, 시카고 베어스에서 16시즌 뛴 전 NFL 롱스냅퍼 사위 패트릭 매널리. 양키스 성명은 지지자들에게 테일러를 마음에 새기길 요청했다.
토론
1. 토미 존의 필드 기록——288승, 4회 올스타, 혁신적 수술 후 14시즌——은 야구 명예의 전당 입성에 걸맞았을까?
투표 최고 31.7%는 유권자가 장수와 전통적 기준을 어떻게 저울질했는지 보여 준다. 스포츠의 형태를 바꾼 수술의 선구자라는 사실은, 의학적 역사 일부에 기대한 후보 자격을 강화할까, 약화시킬까.
2. 토미 존 수술은 이제 모든 레벨 투수에게 일상이 됐다. 그것은 진보인가, 오늘날 야구의 플레이와 육성 방식에 대한 경고인가?
존 자신도 자신의 이름을 딴 수술이 프로보다 젊은 아마추어에게 더 자주 시행되는 이유를 물었다. 투구 부담, 구속 훈련, 외과적 개입에 대해 야구는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까.
존의 투구를 본 적이 있거나, 토미 존 수술을 받았거나, 그 이름 뒤의 인물을 모른 채 자란 사람——그의 유산 중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가.